엄마 : \"유림아 넌 언제 행복해? \"
딸 : \"엄마가 잘 해줄때\"
그렇구나...
딸 : \"엄마가 혼안내면 좋겠어\"
평소에 혼을 안낸다고 생각했는데
밥안먹을 때, 말 안들을 때, 이럴 때 혼낸다고 한다.
\" 내가 그랬나? ㅎㅎ;;\"
항상 피곤해하고 귀찮아하고 그런 내 자신의 모습을
알고있었지만. 막상 아이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참 미안하다.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다가도 미워질 때가 있다고 하지만
아이는 항상 엄마를 이 세상 이 우주 누구보다 더 많이 사랑한다.
어떤날은 우리 겸둥이 하면서 업어주고 학원차까지 마중나가주고 하다가도
대부분은 \"엄마 바쁘니깐 혼자올라와\"
딸 : \"엄마 ~~ 엘리베이터 무섭단말이야~~\"
그러면서 잘 올라오는 아이를 보면
잘다니네 하고 생각하게 되고..
내가 항상 나가줄순없는건데....좀 더 아이가 크기를 기다려야겠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의 공포를 극대화 시키고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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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어떤 엄마는 “우리 아이는 원래 성격이 소극적이었요”라고 걱정스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말 소극적으로 태어난 아이와 적극적으로 태어난 아이가 따로 있을까? 엄마의 눈길 아래에서 자녀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것을 엄마 자신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들이 많이 하는 말 가운데 ‘이 정도는 기본’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 기본이라는 말이 무섭다. 공부나 생활 태도 등 각 엄마마다 나름의 기준을 정해놓기 마련인데, 이 기준에 이르지 못했을 때 아이는 가차 없이 정죄 받고, 기본도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리고 당장 생사화복에 지장을 경험하게 된다. 엄마의 실망하는 표정을 보는 것이 아이에게 매질이나 언어폭력보다 덜 두려울 것 같은가? 아니다. 경직된 엄마의 기준에 어긋났을 때 엄마가 보이는 작은 반응도 아이에게는 굉장한 위력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의 기준에 맞추려 애를 쓰고, 눈치를 보고 소극적이 되는 것일 뿐이다.
어떤 아이도 처음부터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맞도록 태어나지는 않았다. 그저 아주 작은 몸으로 어른의 보살핌에 완전히 의존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존재로 태어날 뿐이다. 그래서 아이는 살아남기 위해 엄마의 기준에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어떠했다’는 말은 맞지 않다. 부모가 ‘어떻게 키웠다’가 맞는 말이다. 자신이 만든 기준을 철저하게 고수하는 엄마들은 자녀가 그 기준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몰래 기준을 어기는 행동을 한 경우, 큰 배신이라도 당한 듯 행동한다.